▲ 무량수전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에는 '浮石(부석)'이라는 글자가 암각되어 있습니다.
한자 뜰 부(浮)자, 돌 석(石)자, 즉 윗바위가 아래바위에 붙어있지 않고 떠 있다는 것이지요.
조선 숙종 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아랫바위와 윗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뜬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리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는 부석사 창건의 유래를 간직하고 있는 바위입니다.
▲ 무량수전의 동쪽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한 보물 제249호 <부석사삼층석탑(三層石塔)>은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신라석탑으로 높이가 5.26미터, 기단폭이 3.56미터 입니다.
사찰의 석탑은 일반적으로 법당 앞마당에 세우는데,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의 동쪽에
서 있는 것이 아마도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삼층석탑의 뒷쪽에서 무량수전 앞마당을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 삼층석탑 뒤편 언덕에서 발견한 <지면패랭이꽃>입니다. 빗방울을 머금은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무량수전의 동쪽 뒤편에 숨은 듯이 자리한 한 칸짜리 작은 전각 <선묘각(善妙閣)>입니다.
근래에 세웠지만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하여 마치 작은 암자의 산신각 같은 느낌입니다.
▲ 선묘각 내부에는 의상대사를 사모하여 몸바쳐 그를 도운 당나라 아가씨 선묘(善妙)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5년에 그린 선묘(善妙)의 영정이 걸려있습니다.
▲ 무량수전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 조사당(祖師堂)에 오르는 길입니다.
참배객들이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돌탑과 고목나무에 걸린 가로등이 퍽 이채롭습니다.
▲ 국보 제19호로 지정된 <조사당(祖師堂)>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전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며 고려 말의 독특한 건축구조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 조사당(祖師堂)은 사찰의 유명한 고승, 창건주 등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말하는데,
내부에는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조사(625~702년)를 중심으로 여러 스님들의 영정과
신중탱을 모셨으며 중앙에는 석고로 조각된 의상조사의 상도 함께 봉안하고 있습니다.
▲ 조사당의 처마 아래에는 '선비화(禪扉花)'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祖師堂) 처마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어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왔다고 합니다.
아기를 못 낳는 부인이 선비화의 잎을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져서
나뭇잎을 마구 따 가는 바람에 훼손이 심하여 현재는 철망으로 둘러싸 보호하고 있습니다.
▲ 조사당 동쪽 바로 옆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 <취현암(醉玄庵)>은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한 곳입니다. 1997년에 복원되어 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 암자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 조사당과 취현암에서 나와 응징전(應眞殿)과 자인당(慈忍堂)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 부석사 <응진전(應眞殿)>은 무량수전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 북편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자인당(慈忍堂)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 <응진전(應眞殿)>은 석가모니의 제자인 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입니다. 건물의 공포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적인
익공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응징전 내부에는 석고로 만든 석가모니불과 십육나한상(十六羅漢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석가삼존불과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신 전각을 나한전(羅漢殿)이라 하고,
석가모니불과 십육나한(十六羅漢)을 모신 전각을 응진전(應眞殿)이라고 부릅니다.
▲ 응징전과 나란히 서있는 <자인당(慈忍堂)>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해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인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자인당(慈忍堂) 내부에는 석조 삼존여래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가 석가여래불이고
좌우의 석불이 보물 제220호인 <비로자나불>로서 정식 명칭은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이 석불은 처음부터 부석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의 폐사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양손이 깨어졌고 얼굴과 대좌 일부가 파손됐으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것으로 보아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응진전 뒤쪽에 위치한 <단하각(丹霞閣)>은 근래에 지은 사방 각 한 칸의 작은 전각으로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셔 놓았는데, 현판에 새겨진 '丹霞(단하)'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확실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삼성각(三星閣)>은 칠성, 독성, 산신을
한 곳에 모신 전각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서, 일반 사찰의 삼성각은 대부분
맞배지붕인데 비해 특이하게 팔작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삼성각 내부에는 불단 중앙에 <미륵반가사유상>을 모셨고 후불탱화로 칠성탱을 걸었으며
왼쪽에는 독성탱을, 오른쪽에는 산신탱을 모셔 놓았습니다.
▲ 삼성각 옆의 석가모니석불을 모신 야외 불전은 근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런 안내자료가 없어서 이름도 모르겟고 어떤 용도의 불전인지도 알수가 없네요.
▲ 삼성각에서 내려오는 길에 예쁘게 생긴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친절하게도 기와에 흰 페인트로 "설법전" 가는 방향을 표시해 놓았네요.
▲ 담장 위에는 비맞은 까치 한마리가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며 두리번 거립니다.
▲ 근래에 세운 걸로 보이는 <설법전(說法殿)> 건물은 무척이나 깨끗하고 단청도 선명합니다.
▲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지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여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 설법전 옆 장독대
▲ 설법전 앞에서 바라본 경내의 풍경입니다.
▲ 경내를 모두 둘러보고 내려오다 범종루 계단 옆 샘터에서 약수물 한바가지를 마십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산사에서 마시는 한모금의 천연 샘물의 맛은 달고도 시원하기만 합니다.
▲ 경내를 탐방하는 동안에는 그나마 다행하게도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했었으나 범종루를 지나 내려오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며 줄기차게 쏟아집니다.
어쩌겠습니까. 빗줄기가 가늘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요...^^
건축 전문가들에게 한국 전통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을 말하라면
이구동성으로 영주 부석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석사는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멋과 맛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창건 이후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법등이 끊기지 않은 오랜 역사성,
독특한 공간 구조와 장엄한 석축단, 당당하면서도 우아함을 보이는 세련된 전각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수많은 장인들의 체취가 살아 숨쉬는 디테일은 영주 부석사가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게 하는 요소들일 것입니다.
천년 역사의 향기가 피어나는 우수한 전통 건축미는 서양의 건축과 문화에 식상한
현대인들에게 가슴이 확트일 만큼 시원한 청량제가 되기에 충분했으며,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앞으로 전통문화를 계승해 나갈 방향까지도 제시해 주는 절집이었기에
꼭 다시 한 번 찾게끔 만드는 매력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늘의 백팔배 사찰탐방... 영주 부석사에서 <다빈치>였습니다.
불자님들, 성불하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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