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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배 108사찰탐방

[137] 광교산 법륜사 - 용인의 불교유적 서봉사지(瑞鳳寺址)에 우뚝선..

by 다빈치/박태성 2014. 8. 3.

 

경기도 용인에는 동명(同名)의 사찰인 법륜사(法輪寺)가 두군데 있습니다. 와우정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고 꽤 많이 알려진 문수산법륜사(文殊山法輪寺)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도심속에 감추어진 광교산법륜사(光敎山法輪寺)가 그곳입니다.

 

오늘 소개드릴 법륜사(法輪寺)는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광교산(光敎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광교산 등산로 길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의 법륜사 절터는 옛날 서봉사(瑞鳳寺)라는 큰 사찰과 그 외 89암자가 있었던 한국불교의 유서깊은 곳에 세워졌으며,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보물 제9호 현오국사탑비(玄悟國師塔碑)와 서봉사지(瑞鳳寺址)가 있는데, 현오국사탑비는 명종 15년에 현오국사(玄悟國師)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세웠고, 서봉사와 89암자가 소실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절에서 떠내려 오는 쌀뜨물이 10리나 흘러내려 왜적들이 쌀뜨물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서 절을 모두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타깝게도 옛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이렇게 오래된 절터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절이 없었던 이곳에 1991년부터 경봉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과 시주자들에 의해 불사를 시작, 2002년 10월 한국 전통 목조건축양식을 재현한 대웅전을 건립하여 광교산의 고요한 적막을 깨고 광교산 자락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 어제까지만 해도 그리 덥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입니다. 용인에서 알려진 문수산 법륜사는 몇년 전에 다녀왔기에 오늘은 광교산 자락에 자리잡은 광교산 법륜사(光敎山法輪寺)로 목적지를 정하고 위치 확인 후 출발합니다.

 

 

 

▲ 도로변 버스정류장 옆에 법륜사 입구를 알리는 안내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 승용차 한대 폭의 좁은 산길을 따라 오분여를 오르니 음식점 간판처럼 생긴 조금은 유치한(?) 아치형의 철문이 일주문을 대신하며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정문을 통과하니 곧바로 사찰 주차장이 나타나고 윗쪽으로 법당이 보입니다. 주차장은 꽤 넓고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네요.

 

 

 

▲ 주차장 오른편에는 돌거북 등위에 대리석으로 만든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읽어보니 大雄殿新建功德碑(대웅전 신건공덕비)라고 새겨 있습니다.

 

 

 

▲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대웅전입니다.

 

 

 

▲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잘 생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대웅전 현판을 당겨 봅니다. 솔가지에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네요.

 

 

 

▲ 대웅전으로 오르기 위해 왼쪽 언덕으로 돌아 오르면 최근에 지은 듯한 2층 건물인 요사채(寮舍)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요사채(寮舍) 앞에는 법회안내 등 공지사항을 알리는 심플한 디자인의 게시판이 서 있습니다.

 

 

 

▲ 1층은 종무소와 공양간(供養間)으로 쓰이고, 2층은 선방(禪房)과 스님이 거처하시는 요사(寮舍)입니다.

 

 

 

▲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본 요사채는 산뜻한 컬러로 단장된 깔끔한 모습입니다.

 

 

 

▲ 요사채 옆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옆모습입니다.

 

 

 

▲ 2002년 가을에 건립된 대웅전(大雄殿)은 앞면과 옆면 각 3칸 규모로 팔작지붕 형식의 법륜사 대표전각입니다.

 

 

 

▲ 지은지 10년 조금 넘은 전각인데도 화려하지도, 고색찬연하지도 않지만 건축미는 아름답습니다.

 

 

 

▲ 창호는 중앙은 사분합문, 좌우칸은 삼분합문을 달았으며, .연화문 꽃살창호로 장식하였습니다.

 

 

 

▲ 중앙칸 사분합문 꽃살창호의 연화문(연꽃문양)은 네가지 종류 문양의 연속무늬로 구성했네요.

 

 

 

 

▲ 클로즈업 해보니 목각 상태나 단청상태가 꽤 섬세함이 엿보입니다.

 

 

 

▲ 정면 왼쪽의 열린 문을 통해 들여다 본 대웅전의 내부 모습입니다.

 

 

 

▲ 대웅전 내부 전경입니다. 마침 스님과 함께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예불을 올리고 있습니다.

 

 

 

▲ 셔터소리를 무음으로 설정하고 스님의 등 뒤에서 몰래 찍었습니다.

주지스님인 경봉스님이신데, 자그마한 체구인데도 염불소리가 우렁차고 멋지십니다.

 

 

 

▲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현보살, 문수보살이 협시하고 계십니다.

세분 다 가느다란 눈매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자해 보이고 아주 잘 생긴(?) 불상입니다.

 

 

 

▲ 중앙 불단의 우측(동쪽)에 모신 대형 탱화는 신중탱(神衆幀) 입니다.

 

 

 

▲ 중앙 불단의 좌측(서쪽) 벽에는 특이하게도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벽화를 그렸으며, 그 옆에는지장탱(地藏幀)입니다.

 

 

 

▲ 법륜사의 특이한 볼거리는 대웅전 내외부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① 대웅전 내부에 그려진 벽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입니다.

이 벽화 속에 그려진 배가 반야용선(般若龍船)인데, 사람이 죽으면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입니다. 이 그림 속의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죽은 사람의 넋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② 부처님께 모래공양을 올린 소년 (아쇼카왕의 전생이야기)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에 계실 때, 어느 날 아난존자를 비롯한 여러 비구들이 함께 성안으로 걸식을 하러 들어가셨는데, 그때 큰 길에서 두 아이가 모래밭에서 놀고 있다가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자 모래를 쌀로 생각하여 부처님의 발우 안에 담아드리고 합장하고 기뻐하면서 즉시 게송으로 말하였는데, 이 모래공양을 올린 소년이 바로 아쇼카왕의 전생이라고 합니다.

 

③ 설산동자(雪山童子)의 구법(求法) - 부처님의 전생담

설산동자는 전생에 석가모니께서 수행하던 시절의 이름으로서 오로지 해탈의 도를 얻기 위해 가족도 부귀영화도 버리고 수행하시고 있었는데, 마침 이를 본 제석천은 설산동자의 이런 뜻의 진심을 의심하였고, 그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무서운 나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諸行無常 是生滅法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는 게송의 반을 읊어 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항상함이 없이 언제나 변화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생하고 멸하는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④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

양류관음은 버드나무 가지를 든 관세음보살로서 33응신 중 한분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소원을 좇아 이루게 하는 것이 마치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쓸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양류관음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 관음은 6세기 전기에 번역된 <다라니집경 陀羅尼集經>에서 최초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큰 원형 광배(光背)를 지고 서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⑤ 달마도(達磨圖)

달마대사는 본디 남인도 사람인데, 선불교(禪佛敎)를 중국에 처음으로 전한 분으로서 그의 아버지는 남인도 향지국(國)의 왕으로 불법을 몹시 숭상하여 많은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베풀었으며 달마대사는 그의 셋째아들입니다.

 

⑥ 혜가스님의 구도

혜가스님은 중국 낙양 무뢰 사람으로 어릴 시절의 이름은 신광(神光)이었는데, 출가 전부터 많은 책을 읽어 학덕이 뛰어난데다 출가 후에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수행에 전념, 32세부터는 향산에 돌아와 8년간 좌선했습니다. 혜가스님은 달마대사로부터 법을 부촉받아 중국 선종의 제 2조가 되었으며 552년 제자 승찬(僧璨)에게 법을 전하고 34년 동안 업도에 머물면서 설법하다가, 뒤에 <열반경>을 강하여 많은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고 열반하시니 당시 107세였습니다.

 

 

 

⑦ 도림선사(道林禪師)와 백락천(白樂天)

당대(唐代)의 대표적인 시인이요, 정치가로 유명한 백낙천이 항주의 자사(刺史)로 부임하였는데, 항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찰에 도림선사라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시험해 보고자 작정하고 찾아 갔습니다.

노송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도림선사에게 "스님의 거처가 너무 위험합니다." 하니 도림선사는 내려다보며, "자네가 더 위험하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은 "나는 벼슬이 자사이며 강산을 진압하고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무엇이 위험합니까?" 라고 말하자, 그의 자만심을 꿰뚫어 본 선사가 “티끌 같은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심만 늘고 번뇌와 탐욕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 하니 백낙천은 선사의 기개에 눌려 가르침을 청하였고 그때부터 불법의 수행을 돈독히 하였다고 합니다.

 

⑧ 한산(寒山)과 습득(拾得) 이야기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은 중국 당나라 때의 사람들로 스승 풍간선사(豊干禪師)와 함께 국청사(國淸寺)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들은 모이면 손뼉 치며 웃고 떠들고, 때론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론 대중에게 거침없는 말을 하여 당황하게 하였으나, 모두 불도의 이치에 맞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국청사에 숨어사는 성인이라 하여 국청삼성(國淸三聖), 국청삼은(國淸三隱)이라 불렀으며, 세분은 곧 불보살의 나투심이니 풍간스님은 아미타불의 화현이고,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현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⑨ 원효스님과 의상대사 이야기

동방의 여러 나라 스님들이 현장스님에게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를 찾아가게 되는데, 신라의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백제땅을 거쳐 요동을 지나서 길을 가던 중, 어느날 해가 저물어 인가가 끊긴 산중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스님은 바람을 피하여 무덤 사이에서 잠을 청했고, 한밤중에 원효 스님은 심한 갈증을 느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잠결에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 속에서 함박 같은 것이 보이고 그곳에 물이 고여 있기에 얼른 그 물을 들이켜서 해갈했는데, 그 물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스님은 간밤에 자신의 갈증을 풀어준 그릇을 찾으려고 주위를 살펴 보는데 이것이 어찌된 것인가요, 스님이 그릇이라고 여겼던 것은 인간의 해골인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달콤했던 물은 해골에 고여있던 빗물이 썩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스님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여러 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도 없는 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삼계가 모두 마음 뿐이라. 어찌 나를 속였으리요.

(心生則 種種法生/心滅則 觸不二/三界 唯心/萬法 唯識/心外 無法/胡用 別求)

 

⑩ 등에 나무가 난 물고기(목어와 목탁의 유래)

이 벽화는 대웅전 좌측 신도 출입문 위에 있는 벽화로써 우리가 흔히 법당에서 볼 수 있는 목탁(木鐸), 목어(木魚), 풍경(風磬)이 물고기 모양을 하게된 유래를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살던 제자가 있었는데, 죽어서 환생을 하였으나, 그 업이 남아 등에 큰 나무가 솟은 물고기로 환생했답니다. 등에 나무가 있으니 헤엄칠 때 엄청 걸리적거리고, 가끔 파도치면 피도 나고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그때 마침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물고기가 된 제자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해탈하도록 도왔답니다.

제자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제 등에 있는 나무를 잘라서 물고기 형상을 만들고 두드려 소리를 내도록 부탁했대요. 그 소리로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되지 말라는 뜻이었지요. 그래서 나무로 만든 물고기, 즉 목어(木魚)와 추녀의 풍경(風磬)이 각 사찰마다 달리게 된 것이라고 전해옵니다

 

 

 

 

 

▲ 대웅전 동쪽 측면의 모습입니다.

 

 

 

▲ 대웅전 서쪽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전(觀音殿)입니다.

관음전은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풍판을 달지 않은 맞배지붕 형식의 전각입니다.

 

 

 

▲ 2분합문의 각 창호는 평범한 빗살창호를 걸었으며 옛 삼성각을 개조했다고 합니다.

 

 

 

▲ 관음전 내부 전경입니다. 불단의 관세음보살상 뒷벽 전체에 연꽃그림 벽화을 그렸습니다.

 

 

 

▲ 벽화의 그림은 108번뇌를 의미하는 108송이의 연꽃 그림으로 동국대 경주캠퍼스 허만욱 교수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 나중에 안 사실인데, 관음전 외부 뒷벽에도 허교수님의 오방색 연꽃그림이 있다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네요.

 

▲ 대웅전 동쪽 뒷편 언덕위에 자리한 삼성각(三聖閣)은 임시 가건물의 형태입니다. 삼성각이 임시 가건물 형태인 이유는 원래의 삼성각 건물을 관음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임시로 가건물 형태의 건물을 짓고 내부에 삼성(三聖)을 모셔 놓았다고 합니다.

 

 

 

▲ 내부에는 중앙에 칠성탱(七星) 좌우에 독성탱(獨聖)과 산신(山神)을 모셨습니다.

 

 

 

▲ 삼성각 앞마당에서 내려다 본 사찰 전경입니다.

 

 

 

▲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대웅전 뒷모습입니다. 관음전과 요사채가 보입니다.

 

 

 

 

▲ 요사채 뒷편에는 작은 규모의 소전대(燒錢臺)가 있습니다. 소전대(燒錢臺)는 한문 글자 그대로 보면 '돈을 태우는 장소'라는 뜻이지만 제를 지낸 후에 축문이나 위패, 고인의 유품을를 소각하는 곳입니다.

 

 

 

▲ 소전대 굴뚝 옆에는 지장보살로 보이는 미니석불(?)을 세워 두었습니다.

 

 

 

▲ 정겨운 우편함처럼 생긴 이것은 사찰을 찾은 참배객들의 불편사항이나 건의 내용을 적어서 넣을 수 있게 배려해 놓은 "우리들의 소리"라는 건의함이라고 합니다.

 

 

 

▲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비를 맞고 서있는 나무에 처음 보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네요.

 

 

 

▲ 처음보는 나무 열매라서 이름이 궁금하기에 돌아와서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모감주나무>라고 나옵니다.

 

 

 

▲ 삼성각 옆의 풀밭에 앉아서 강아지풀을 향해 잠시 카메라를 들이대 봅니다.

 

 

 

▲ 풀잎에 맺혀서 또로록~ 흘러내리는 투명한 빗방울이 아름답습니다.

 

 

 

▲ 풀밭 군데군데 피어있는 주홍빛 얼룩무늬가 선명한 <범부채꽃>입니다. 꽃망울에 맺혀있는 빗방울이 마치 이슬방울 같습니다.

 

 

 

▲ <달맞이꽃>도 빗물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 있습니다.

 

 

 

▲ 가을국화를 닮은 이 꽃은 <쑥부쟁이>입니다.

 

 

 

▲ 어린 시절 들판에서 흔히 보았던 꽃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달개비꽃>으로 알고 있는데, <닭의장풀>이라고도 부른답니다.

 

▲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 담장용으로 많이 심었던 <측백나무>의 열매입니다.

 

 

 

▲ 대웅전 앞마당 끝에 서있는 밤나무에도 밤송이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 법륜사 경내를 두루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대웅전 앞마당 석축 아래 텃밭 중앙에 서있는 느티나무 주변에 돌탑을 쌓아 놓았네요.

 

 

이곳 광교산 법륜사는 널리 알려진 사찰이 아니다보니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사찰에 대한 정보나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마침 이날은 49재가 있는 날이라 스님들이 워낙 바빴기에 대화를 나눌 수 없어서 엊그제 주지스님인 경봉스님과 전화 통화를 하여 사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친절하게 들을 수 있었기에 그나마 사진 설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7월의 마지막 휴일, <다빈치>와 함께한 빗속의 백팔배 사찰탐방...

도심 속에 숨은 사찰, 용인의 불교문화 유적이 서린 <광교산 법륜사> 였습니다.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여름철 건강에 특히 유의하시고 날마다 즐거움과 행복으로 채워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