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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배 108사찰탐방

[134] 청명산 홍법사 - 홍랑각시의 슬픈 전설, 400년 고찰

by 다빈치/박태성 2014. 7. 4.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 남양홍()씨 집성마을 맨 위쪽 청명산 기슭에 자리잡은

홍법사(弘法寺)는 조선 광해군 3(서기 1611)에 창건되어 1920년대에 중창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에 소속한 홍법사(弘法寺)는 남양 홍()씨 가문의 절세미녀인

홍랑(洪郞)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사찰로서 홍씨 문중의 사찰로 시작한 탓에 4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크게 중흥하지 못했으며 연혁마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남양홍씨 가문의 규수인 홍랑(洪娘)이 명나라에 끌려가 천자(天子)의 후궁이 되었으나

고향을 그리며 금식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천자(天子)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회개시키는 한편, 자신의 모습과 똑 같은 부처를 만들어 고향에 보내주고 자신을 위해

절을 짓도록 해달라고 청하여 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슬픈 유래가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2014627일 촬영)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 비봉 나들목에서 나와 곧바로 우회전 하여 서신,대부도 방향

이정표를 따라가다 서신읍내를 지나면 좌측에 홍법사로 향하는 작은 표지판이 보입니다.

표지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다 보면 홍법사 못미쳐 길옆에 조그만 저수지가 나타납니다.

 

 

 

저수지라기보다는 대형 연못으로 불러야 할 크기인데 낚시터로 이용되는 듯 합니다.

 

 

 

저수지를 지나 산길을 조금 오르니 사찰 입구 공터에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저 멀리 사찰 전경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오는동안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후 바라보니 맨 먼저 참배객을 맞이하는 것은 층수 높은 석탑입니다.

석탑이 서있는 우측 돌계단 위로 대웅전이 보입니다. 석탑은 참배 후에 보기로 하고,

언제나 그렇듯 우선 백팔배부터 해야겠기에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을 뵈어야겠지요.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좌우의 경사진 언덕 화단에는 특이하게 조경을 해놓았습니다.

돌계단 왼쪽편에는 불교의 상징 문양인 삼보() 마크와, 오른쪽에는 만()자 형태로

나무를 조성해 놓은 모습이 깊은 인상을 줍니다.

 

 

 

삼보(三寶), 불교의 중요한 문양 중 하나로서 불보(佛寶:부처), 법보(法寶:법문),

승보(僧寶:수행자)를 의미하며, ()자는 글자 모양이 수레바퀴가 구르는 형상인데,

깨달음을 구함에 있어서 수레를 굴리는 것처럼 걸림없이 법을 펴 나간다는 뜻입니다.

 

 

 

돌계단을 올라 앞마당에 서서 대웅전(大雄殿)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앞마당 끝 돌계단 언저리에는 연노랑 달맞이꽃 수십그루를 가지런히 피어 있네요.

 

 

 

홍법사의 유일한 법당인 대웅전(大雄殿)은 전면 3,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의 전각(殿閣)입니다.

참고로 한옥 건축물의 기와지붕은 그 형태에 따라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팔작지붕은 현존하는 권위건물의 지붕형태 중에서

가장 많은 형태의 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가 모두 갖추어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구성미를 지니고 있으며, 곡면이 특이 하여 왕궁,사찰건축 등의

정전(正殿)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팔작지붕은 신라시대의 가형토기 및 백제시대의

전돌문양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오랜 유물이며, 통도사 불이문, 청와대 본관, 경복궁 근정전,

경희루 등이 대표적인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대웅전 앞 돌계단 옆에는 홍법사 창건유래에 대해 자세한 안내판이 서있습니다.

 

 

 

정면 어칸과 좌우 협칸 모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었으며, 창호(窓戶)

궁판을 가진 교살(빗살무늬) 창호입니다. 네기둥에는 각각 검정바탕에 흰색글자로 쓴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장식삼아 세로로 써서 붙이는 글씨)을 걸었습니다.

 

 

 

大雄殿(대웅전) 편액의 테두리는 붉은 배경에 연꽃 문양 등으로 장식하였으며

글씨체는 평범하면서도 짜임새있는 온화한 느낌을 주는 서체입니다.

 

 

 

대웅전 내부는 위용당당한 외관과는 달리 소박한 모습으로 천정은 닫집도 없고

평범한 일반 주택처럼 목재로 마감했습니다.

마침 오늘이 초하룻날이라서 신도들이 주지스님이 주관하는 예불을 드리고 있습니다.

 

 

 

불단 중앙에는 일반 사찰의 삼존불과는 다른 모습의 흰색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이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 좌우 협시는 무쇠사공(沙工)이라고 합니다.

삼존불 뒤로는 후불탱화와 함께 불교경전을 빼곡히 꽂아 놓은 것이 특이합니다.

 

 

 

홍법사 창건 당시 명나라에서 보냈다는 비로자나불과 2구의 무쇠사공 봉안 내력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 조선 광해군 시절의 가슴 아픈 설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표면에는 호분(胡粉)을 칠해서 본래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불상과 무쇠사공은

기나긴 세월의 무게에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입니다.

 

 

 

얼마 전 중국의 남경(南京)대학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이곳 홍법사를 방문했을 때,

불상과 무쇠사공을 보고 자기네 중국 불상이 확실하다며 보존상태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삼존불 좌측의 탱화(사진위)와 삼존불 우측에 봉안한 탱화(사진아래)입니다.

 

 

 

대웅전 내부 왼쪽 출입문 옆에는 국악타악기인 징처럼 생긴 금고(金鼓)가 있습니다.

금고(金鼓)는 타악기의 일종으로 글자 그대로 쇠북, 반자(飯子) 또는 금구(禁口)라고도

부르며, 불교 의식용과 군대의 군사활동용의 두가지로 용도로 사용 되었다고 합니다.

가운데에 연화문 문양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에 淸明山弘法寺(청명산홍법사)란 글자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범종각이 없는 사찰에는 대부분 법당 내부에 작은 범종을 세워두는데, 홍법사에서는

이 금고(金鼓)가 범종을 대신하는 듯합니다.

 

 

 

 

대웅전 외부의 양쪽 측면과 후면에는 팔상도(八相圖)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대표적인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불화(佛畵)로서

석가팔상(釋迦八相) 또는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팔상도는

1447년에 제작된 석보상절(釋譜詳節)의 목판 팔상도가 가장 오래된 팔상도입니다.

 

 

 

대웅전을 오를 때 돌계단 좌측 언덕 아래에서 만났던 7층석탑 앞에 섰습니다.

복원된 석탑의 모습이 원래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난 듯 어딘가 어색한 모습입니다.

외관상으로는 전남유형문화재 제276호인 운주사 칠층석탑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전체적으로 백제시대 석탑 양식에서 볼 수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기단갑석, 불상 대좌, 옥개석 등 부재(部材)들에 탑신석은 모두 새로 만들었고

1층과 2층 옥개석으로 사용된 부재(部材)는 석등이나 부도의 부재일 수도 있고,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불상대좌형 석탑의 기단부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층에 올려진 옥개석은 파손이 무척 심하며 형태가 방형이고 연화문양을 보아

석불상의 연화대좌나 불상재좌형 석탑 기단부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4~6층 옥개석은 모두 석탑 옥개석인데 층급받침은 3단이고 처마선의 반전이

심한 편이며 7층 옥개석으로 사용된 부재(部材)는 석탑 옥개석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에 사용했던 건지는 모르겠고 상륜부 부재(部材)는 근대 이후의 것으로 추측됩니다.

 

 

 

대웅전의 반대편 서쪽길가에는 홍랑각(洪娘閣)이란 사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나라로 끌려가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킨 홍랑의 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홍랑각이 있어서 경내 전체를 통틀어 전각이라곤 대웅전 한채만 덩그러니 서있는

홍법사를 그나마 쓸쓸하지 않게 해주고 있습니다.

 

 

 

정면 3,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식의 작은 전각인 홍랑각(洪娘閣)

남양홍씨 가문의 규수인 홍랑(洪娘)의 영혼을 기리고자 건립된 사당(祠堂)입니다.

 

 

 

내부에는 홍랑각시의 영정을 모셔 놓았는데,

제단 위에 공양물로 올려진 대추가 설화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섬세하게 그려진 영정속 홍랑(洪娘)은 녹색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액자 유리의 반사광을 최대한 피하느라 정면이 아닌 약간 측면에서 촬영했습니다.

 

 

 

홍랑각 외부의 좌우 측면과 후면 벽에는 각칸마다 1점씩 설화 내용을 나타내는

5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조선 광해군 2, 서해 해변마을인 홍법마을에 명나라 천자의 후궁을 구하러 온

사신들이 젊은 아낙네들은 모조리 끌어내니 마을 주민들은 젊은 처녀들을 숨기느라

온마을은 비명과 통곡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홍만석의 딸 홍랑은 절색으로 소문난

터라 관원들은 홍랑을 내놓지 않으면 왕명을 어긴 죄로 삼족을 멸하고 마을까지

폐촌시키겠다고 위협을 한다.

 

마을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던 홍랑은 조공의 제물로 자신의 희생을 결심하고

모래와 대추, 물 세말을 가져갈 것을 간청, 명나라를 향해 무거운 발길을 옮긴다.

 

 

 

천자의 후궁이 된 홍랑은 고향에서 가져간 대추와 물로 연명하고 궁 뜰에 모래를

뿌리며 백일간 단식투쟁으로 몸을 지키다 "내목숨이 없어지더라도 내 넋은 보살이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며, 내가 뿌린 모래는 궁뜰에 남아서 천자가 회개하도록 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긴 후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한을 남긴채 세상을 떠난다.

 

홍랑이 죽은지 3일만에 천자는 이름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고 백약이 무효였는데

어느날 천자의 꿈에 나타난 홍랑은 "방탕한 성품을 회개하고 백성을 아끼는 성군이

되시오. 그리고 소첩의 혼이 담긴 보살상을 만들어 돌()배에 태워서 무쇠사공

12명과 함께 고향으로 보내달라. 그러면 병도 나을 것이며 나라도 부흥될 것이오."

라고 말하니, 깜짝놀라 꿈에서 깬 천자는 석공과 철공을 시켜 돌배와 무쇠사공,

보살상을 조각케 하고 자신도 불전에 나가 백일기도를 하며 홍랑의 넋을 위로하고

자신의 잘못도 뉘우친다.

 

 

 

천자의 백일기도 마지막날 완공된 보살상과 무쇠로 만든 12명의 사공을 돌배에

태워 바다에 띄우니, 이 돌배는 흘러 흘러 꿈에도 그리던 고향 앞 바다에 다달았다.

이때 홍법마을에 사는 남양홍씨 문중의 원로 3명의 꿈에는 똑같이 홍랑이 나타나

"서신 앞바다에 보살상과 무쇠사공이 있으니 사찰을 짓고 모시도록 하라" 이르니,

꿈을 꾼 노인들이 바다에 나가보니 정말 돌배에 무쇠사공이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조심스럽게 돌배위의 보살상과 무쇠사공 2명은 내렸으나 나머지 사공 10명과 돌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홍랑각에서 나와 숙연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경내 곳곳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군데군데 심어놓은 꽃들과 몇그루의 과일나무, 텃밭의 각종 채소를 스케치해 봅니다.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옆 언덕에서 만난 하얀색 <초롱꽃>입니다.

 

 

 

마지막 꽃을 피우며 이제 막 열매들이 맺기 시작한 <자주달개비>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미 꽃이 지고 있는 <수국>도 늦도록 연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고...

 

 

 

산속이라 그런지 철늦은 <금계국>도 샛노란 금색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네요.

 

 

 

석탑이 서있는 언덕 옆에는 <비비추>도 군락을 이루며 피었습니다.

 

 

 

홍랑각 뒷산에 피어있는 갸날픈(?) 모습의 이꽃은 <선괭이밥>이라고 하네요.

 

 

 

요사채 뒷뜰에 핀 몇그루의 <장미> 중에서 잘생긴 놈(?)을 골라 찍어 봤습니다.

 

 

 

주차장 옆 담장에는 제철을 만난 <능소화>가 제발 자기를 보아 달라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여러 송이의 능소화 중에서 사각대칭을 이룬 이놈들이 제일 잘 생겼네요..^^

 

 

 

그 외에도 천일홍, 도라지꽃, 접시꽃, 자귀나무 꽃도 예쁘게 피어있고...

 

 

 

대웅전 앞마당의 블루베리는 아직은 덜 익은 상태이고, 살구는 노랗게 익었고,

텃밭에 심은 방울토마토는 금낭화 꽃처럼 조로록 매달렸고, 하트 모양의 나뭇잎이

특이하여 찍은 이것은 돌아와서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마()잎이라고 나옵니다.

 

 

 

심경이 복잡할 때 사람들은 오랜 역사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유명 사찰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곤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이름난 사찰은 관광인파들로 붐벼서

장사진을 이루는 터라 오히려 피로만 떠안고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아담한 산사의 고요는 찾는 이의 평안을 더해 주고

스님이 건네는 고유의 전통차 한잔은 차갑게 식어있는 가슴까지 따뜻이 녹여 줍니다.

 

 

 

오늘 홍랑각시의 전설이 담긴 홍법사에서 느낀 커다란 아쉬움은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 특히 국내 유일의 무쇠사공은 희소성과 문화적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높은 보존 가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나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주문도, 사천왕도, 범종각도, 산신각도 없는 절집에는 유일한 법당인 대웅전과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킨 조선 여인의 사연이 담긴 홍랑각만이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고,

더구나 찾는 사람도 거의 없어 더욱 쓸쓸하기만 한 홍법사를 내려오면서 몇번이고

뒤돌아보느라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숨은 보물을 찾아서 떠난 오늘의 사찰탐방, 화성시 청명산의 <홍법사>였습니다.

 

불자님들, 성불하십시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