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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배 108사찰탐방

[144] 삼각산 수국사 - 보물을 품은 도심 속의 황금사찰

by 다빈치/박태성 2015. 1. 3.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북한산 자락 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수국사(守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서울 서북부지역의 대표 사찰이며 법당 안팎을 금으로 도금한 황금사찰로 잘 알려진 특이한 사찰로서

특히 보물 제1580호인 고려 후기의 불상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있는 곳입니다.

 

수국사(守國寺)는 조선 1459(세조 5)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懿敬世子)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그의 극락왕생을 빌고자 그의 능 근처에 세운 사찰로서 창건 당시에는 정인사(正因寺)라는 이름이었으나

화재와 전란을 겪으면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고 1900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고 수국사(守國寺)

개명하여 왕실의 안녕과 수복을 축원하는 원찰(願刹)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 후 6.25전쟁 등으로 건물들이 대부분 소실돼 주지스님들의 주도로 지속적인 중창이 이루어지다가

1992년에 한자용 스님이 회주로 부임하면서 수국사의 중흥을 내걸고 한국을 대표하는 황금사원으로

만들기 위해 형형색색 화려한 단청의 일반 사찰과 차별화 하고자 사찰 내외부를 황금으로 꾸몄습니다.

 

(201412월 26일)

 

 

 

 

지하철 구산역에서 구산사거리를 지나 서오릉 방면으로 가다보면 고양시와 경계를 이루는

벌고개를 넘기 직전에 좌측 골목 입구에 수국사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표지판이 서있는 길을 따라 주택가 골목길을 100여 미터 정도를 들어가면 곧바로 사찰 입구입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넓은 절마당에서 바라보니 금빛 찬란한 황금사찰이 위용을 나타냅니다.

전체 공간이 넓기는 한데 생각보다는 전각의 배치가 단순하고 황금법당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먼저 황금법당으로 가기 위해 왼쪽으로난 언덕길을 오릅니다. 길 오른 쪽으로 용왕상(龍王像)이 있고,

언덕 위로는 저녁 햇살을 받은 법당이 황금색으로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용왕상(龍王像)이 세워진 연못인 용왕정(龍王井)은 이번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몇년 전 사월초파일에 이곳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분수를 시원하게 쏘아 올리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龍)은 큰 바다에 살면서 구름을 불러 비를 내리는 마력을 갖고 있다고 믿어왔으며, 경전에는 용에 대한

설화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용왕(龍王)은 산신(山神)과 더불어 인간과 가장 가까이 계시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고

건강과 질병을 고쳐 주며 비를 내리게 하여 오곡을 성장시키는 큰 역할을 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에 나타나는 용왕은 인도 나가(那伽)의 형상은 없고, 일반적으로

머리에 용 모양의 관을 쓰고 왼손은 용의 꼬리 부분을, 오른손은 여의주를 잡고 있습니다.

 

 

 

 

수국사의 주법당인 황금보전(黃金寶殿)은 정면 3, 측면 7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식의 건물로

지붕과 기단석을 제외한 전체를 모두 순도 99.9%의 황금을 입혔고, 건평 108평 규모에 청기와로 된

전통목조건물로서 정면이 도리칸인 여느 법당과는 달리 보칸이 정면을 취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에도 황금사원인 '금각사'가 있지만 그 규모는 25평에 불과해 건평 108평의 규모인

수국사야 말로 "동양 최대의 황금사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요된 순금만 33킬로그램으로

20억원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대웅전 기능을 가진 본법당에 금을 입힌 것은 무슨 까닭일까수국사측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는 부처님을 상징한다. 때문에 법당을 금으로 입히는 것은

부처님께 황금옷을 입혀 드리는 것이 된다. 또한 금은 매우 순수한 물질이어서 변치 않는 속성이 있기에

이 황금이 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불자들에게는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건물은 연꽃 초석 위에 하층석주를 놓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올려 외9, 15포의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서 정면은 4분합문, 좌우측면은 3분합문을 달아 개방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법당은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편액(전각의 이름을 적은 현판)이 없습니다.

그 연유를 알기 위해 종무소 직원에게 물었더니 스님이 출타중이라 모른다는 얘기만 들었네요.

 

 

 

사찰 건축물의 공포(拱包)라는 부분입니다. 공포(拱包)는 천장을 높여주고 길게 뻗어나온 서까래 등

처마 하중을 이상적으로 받아 그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는 목조건물의 가장 복잡하게 결구된 부분입니다.

보기에도 매우 복잡해 보이죠? 일반사찰인 경우라면 울긋불긋한 단청이 칠해져 있었겠지요.

 

 

 

 

정면 3칸은 4분합 빗꽃살창호인데 비해 좌우측면의 7칸은 3분합 창호를 걸었으며 역시 모두 황금으로

가칠되어 있는데, 국화문을 비롯해 모란문, 연화문 등 불교적 상징을 띄는 꽃무늬로 도안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탐방객들이 다녀가다보니 손잡이 부분은 금칠이 많이 벗겨져 있네요.

 

 

 

 

수국사의 주법당인 황금보전(黃金寶殿) 내부 전경입니다. 외부만 황금칠이 된 것이 아니라

법당 내부의 기둥, 바닥, 천장, 불상도 모두 황금으로 돼있어 온통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습니다.

 

 

 

 

장방형의 건물 배면에 대규모 불단을 만들고 불단 위에는 다섯분의 부처님(약사여래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아미타불)과 그 앞쪽으로 협시불로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셨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사이에 목조아미타불(보물 제1580)를 모셨는데, 각각의 불상 앞에는 명호가

다 붙여져 있어서 초보자들도 알아보기 쉽게 배려를 하였습니다.

 

 

 

 

앉아계신 순서대로 따로따로 정면 촬영한 것을 나란히 합성해 보았습니다.

1995년에 조성된 이들은 앉은키가 2.1m에 이르며 앉은 자세가 각각 다르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분의 부처님 사이사이에 모셔놓은 협시불인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입니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수국사가 품고있는 보물을 소개 드릴 시간입니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사이에 모셔놓은 보물 제1580<아미타여래좌상>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정식 명칭은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守國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으로서 원래 강원도 심원사에

있던 것을 진관사에서 봉안하다가 20세기 초에 월초화상이 수국사를 재창건할 때 가져 온 것이라고 하며,

서산 개심사의 아미타여래좌상, 서울 개운사의 아미타여래좌상, 나주 심향사의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

13세기 중·후반의 불상들과 비교되는 중요한 보물입니다.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연대가 적힌 발원문이 없어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후한 얼굴과 건장한 형태미, 그리고 이중으로 입은 착의법과 자연스러우면서 특징 있는 옷주름 등에서

13세기에서 14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이 유사합니다.

, 힘과 중후함이 느껴지는 얼굴과 신체는 물론 왼쪽 어깨에서 짧고 촘촘하게 흘러내린 좁은 겹주름과

금구 장식 없이 간결하게 처리된 승각기의 표현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후기 불상으로 추정 됩니다.

 

 

 

 

멀리서 기둥 사이로 줌인해 본 석가모니불의 잘 생긴(?) 얼굴입니다.

 

 

 

 

불단의 오른쪽 벽면에 걸린 대형 신중탱화(神衆幀畵)입니다.

상단에는 예적명왕(穢跡明王)을 중심으로 좌우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배치하였고,

하단에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 일컬어지는 위타천(韋陀天)을 중심으로 사천왕(四天王)

천룡팔부와(天龍八部)104위 신중((神衆)들이 불법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천장의 걸린 연등이 장엄합니다. 각가지 다양한 형태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탄생시 구룡토수(九龍吐水)하는 모습, 비천상(飛天像), 해태, 기린, 가릉빈가,

, 태자께서 일곱 걸음 걸을 때 솟아난 연꽃 등의 그림을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수국사에는 일주문도 없지만 범종각도 없습니다.

별도의 범종각이 없어서인지 법당 내부 한쪽켠에 아담한(?) 사이즈의 범종(梵鐘)이 놓여 있습니다.

 

 

 

 

법당의 신도출입문 입구 쪽에는 대형 목탁이 놓여있습니다. 대형 수박보다도 큰 크기입니다.

예불을 드릴 때 스님이 직접 두드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상징적인 모형물로 추측됩니다.

 

 

 

 

법당에서 나오면 약수터로 오르는 낮은 언덕 위에 초전법륜상(初轉法輪相) 및 오비구상(五比丘像)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이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최초로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법의 수레바퀴를 굴린 것이라고 비유한 말이며, 오비구상(五比丘像)은 부처의 초전법륜에서

깨달음을 얻고 최초의 비구가 된 아야교진여, 아습비, 마하나마, 바제, 바부 존자등 다섯 스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들 진지하게 부처의 설법을 듣고 있는 모습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법의(法衣)를 입은 그들은

부처의 설법에 기뻐하며, 어떤 이는 합장(合掌)으로 예를 올리고 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하는데 설법 장면을 인자한 모습의 관음보살님이 정병들고 묵묵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비구상(五比丘像)의 위쪽으로는 守眼舍(수안사)라고 부르는 약수터가 있습니다.

그대로 직역하면 '눈을 지키는 곳'이 되는데 이 약수를 마시면 눈이 맑아진다고 합니다.

옆에 세워진 안매판에는 수질 검사표와 함께 '守決明泉(수결명천)-눈맑샘'이라고 써 있습니다.

 

 

 

 

약수터 앞에서 바라본 황금법당의 후측면 모습입니다.

 

 

 

 

사찰탐방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은 평소 보기 힘든 야생화를 만나서 촬영하는

것인데, 추운 겨울철에는 경내 어디에도 꽃은 물론이고 나무 한그루도 찍을 거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약수터 옆에 서있는 산수유 나무가지에 추위를 이기며 꿋꿋이 빨간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유일하게 산수유 열매를 찍으면서 장난을 좀 쳐봤습니다. 추상화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 졌네요..^^

 

 

 

 

법당 오른쪽 아래에는 미륵전(彌勒殿)이 있습니다. 미륵전은 미륵석불 앞에 가건물 형태의 유리건물

안에서 참배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사진 찍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편합니다.

미륵불 앞면을 가리고 있어 미륵불 전체를 정면에서 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건물 형태의 전각 뒤에 세워진 1975년에 조성했다는 석조미륵불입상(石造彌勒佛立像)입니다.

 

 

 

 

불교에서의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7000만 년이 지난 뒤에 출현하는 미래불로서

미륵불신앙은 미륵불이 출현하는 국토의 풍요로움과 안락함에 대하여 설함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죄악의

종자와 모든 업장과 번뇌의 장애를 끊고 자비심을 닦아서 미륵불의 국토에 나도록 하자는 데 그 깊은 진의가 있다고 합니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석불의 얼굴에 자비로움이 가득합니다.

 

 

 

 

 

미륵불 오른쪽 옆에는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과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봉안공덕문이 같이 새겨진 대형 석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미륵전 아래쪽에는 가건물 형태의 초라한 칠성각(七星閣)과 산신당(山神堂)이 있습니다.

칠성각과 산신당은 대부분 대웅전보다 높게 사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게 마련입니다만

이곳은 대웅전 보다 훨씬 낮은 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전각을 지을 때까지

임시로 조립식 형태의 건물에 산신과 칠성을 모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칠성각, 산신당이라는 현판이 없었더라면 해우소(화장실)로 착각을 할 뻔 했습니다.

 

 

 

 

내부에는 정면에 칠성탱화(七星幀畵), 측면에 산신탱화(山神幀畵)가 모셔져 있고 산신탱 앞에는

작은 금동불을 모셨는데,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로 보입니다. 그런데 산신당과 칠성각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진 것은 처음보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여기가 칠성각이고 보면 칠성여래(七星如來) 중 일곱 번째가

약사유리광여래불(藥師琉璃光如來佛)임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수국사 앞마당 가장자리 부분 언덕에 세워진 지장전(地藏殿)은 팔각정자형(八角亭子形) 건물로

십자형(十字形)의 팔작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곳에도 편액(현판)이 걸려 있지 않습니다.

원래는 범종이 있던 종각(鐘閣)이었으나 나중에 대웅전으로 개조되었으며, 황금법당이 지어진 이후

지장전(地藏殿)으로 탈바꿈하였다고 합니다.

 

 

 

 

지장전 외부의 공포 아랫부분에는 먼지가 가득 앉은 커다란 목탁이 걸려 있습니다.

지난 19844월에 목탁새 한 쌍이 대형목탁 속에 둥지를 튼 뒤, 매년 초여름이면 찾아와

대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고 사는 것이 확인되어 목탁모양으로 새집을 만들어 놓았는데,

매년 가족이 늘어나 6쌍이 살았다고 하여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되었으며

지금은 빈 집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내부 평면은 팔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단에는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모셔져 있고,

 

 

 

 

지장보살 후면의 후불탱화로는 지장탱화가 걸려 있습니다.

 

 

 

 

우측 벽에는 감로탱화(甘露幀畵)가 걸려 있습니다. 감로(甘露)란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린

단 이슬이란 뜻으로 불교경전에 감로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부처님의 교법을 감로에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감로탱화(甘露幀畵)는 영단(靈壇)에 모시는 탱화로서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불화(佛畵)입니다.

 

 

 

 

지장전 옆쪽에 위치한 야외 지장전(野外地藏殿)입니다.

 

 

 

 

지장전 내부에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 있건만 부근 뜨락에 또 지장보살을 세워어 놓았습니다.

컬러풀한 색채의 연화대좌 위에 평온한 눈빛으로 속세를 굽어보며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석등 안에는 귀여운 모습의 동자승 둘이서 참배객들에게 환한 미소를 날리고 있습니다.

 

 

 

 

숨은 보물을 찾아 떠난 수국사 사찰탐방에서 너무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수국사에는

보물 제1580호인'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3684점 등의 많은 문화재가 있으나

그 중 서울지방유형문화재 242, 243, 244, 245, 246, 247호로 지정되어 있는 6점의

보물급 불화는 사찰 수장고(收藏庫)에 보관하여 비공개하기에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황금사찰로 알려진 유명세에 비하여 전체를 둘러보는데는 1시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니 점점 기온이 내려가면서 추워지기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 옵니다.

 

 

 

주차장 옆에는 3층 건물인 '수국사 문화센터'가 있습니다.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요사의 역할도 겸하는 이곳은 지하층은 공양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층에는 종무소, 불교용품판매점, 신도회 사무실, 2층과 3층은 문화센터, 강연장 등이 있어

불화반, 서예반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불교대학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황금사찰'로 잘 알려졌다는 인식 때문에 매우 웅장하고 큰 규모를 예상하게 되지만,

수국사는 서울 서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심 속의 아담하고 고즈넉한 사찰입니다.

 

가족과 함께 도심속에서 자연과 휴식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사찰을 찾으신다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황금사찰 수국사로

힐링 여행을 떠나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가까운 곳에 서오릉이 있고, 상암동 소재 월드컵 주경기장 등도 연계하여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나들이 코스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