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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메고 떠나자

경인년 마지막 일요일, 수락산 학림사에서..

by 다빈치/박태성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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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경인년(庚寅年)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지난 6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백팔배 사찰탐방을 시작한지 어느덧 6개월이 되었고,

이제 며칠이 지나면 경인년 한해를 보내고 2011년 신묘년(辛卯年)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올해의 마지막이 될 백팔배 참배사찰은 서울 수락산의 천년고찰 학림사(鶴林寺)로 정했다.

오늘 아침도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영하의 추운 날씨이지만 단단히 챙겨입고 길을 나선다.

 

 

↑↑ 학림사로 들어서기 전에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대추모양의 부도(浮屠) 2기이다.

     사찰과는 한참 떨어진 의외의 장소에 서있는 부도(浮屠)는 주변의 여건상 원래의 위치가 이곳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아슬아슬한 언덕 위의 산비탈에 세워져 있는데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1기의 부도에는 “ 상궁○○○”이라는 글이 남아있어 사찰과 인연이 있는 상궁의

     부도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

 

 

↑↑ 부도(浮屠)를 지나 학림사의 내력이 적혀진 안내문 간판에는 학림사(鶴林寺)란 이름은

     절의 위치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지포란(鶴之抱卵)의 지세라 하여 유래된 것이라 한다.

 

 

↑↑ 안내판 오른쪽 옆에 돌계단이 있고, 별로 길지 않은 계단의 끝에는 학림사에서 자랑하는

     오랜 보물이자 영험하기로 이름난 약사불의 거처인 약사전(藥師殿)이 자리잡고 있다.

 

 

 ↑↑ 지금까지 많은 사찰탐방을 하면서 접해온 약사전은 모두 사찰 내에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경내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서 절을 찾은 분들이 가장 먼저 찾게끔 하였으니

     그만큼 이곳 약사불이 학림사의 간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 내부에는 서울지방문화재자료 32호인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소박하게 봉안되어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조선 초기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친근해 보인다.

 

 

 ↑↑ 약사전에서 나와 100m 정도 돌아 오르면 경내로 올라가는 108계단 앞에 이른다.

     멀리 계단 위에는  일주문인 듯한 문이 참배객을 맞이하려고 우뚝 서있다.

 

 

↑↑ '水落山鶴林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이것은 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한다.

     학림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일주문, 사천왕문의 역할을 하는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법계(法界)에 들어가게 되는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 해탈문 안에는 코끼리를 탄 천진난만한 표정의 보현동자와, 사자를 탄  문수동자가 중생을 맞는다.

     그들 뒤로 부처의 경호원인 사천왕이 그려져있어 천왕문(天王門)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 해탈문을 통해 경내로 올라가는 108계단에는 4쌍(8마리)의 귀여운 원숭이 조각이 있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원숭이부터  눈 가린 원숭이, 귀 막은 원숭이, 끝으로 두 손을 번쩍 들며

     만세를 외치는 원숭이까지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자리를 지키는데, 사악한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의미이며, 끝으로 만세를 외치는 원숭이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해탈문을 지나 계단 끝에 있는 걸로 봐서 속세에 대한 해탈의 환희(歡喜)를 표현한 듯 하다.

 

 

↑↑ 해탈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포대화상이 반기고 있으며, 그 위쪽으로 팔작지붕 누각건물인

     청학루(靑鶴樓)가 서 있는데  청학루 밑을 지나면 대웅전에 이르게 된다.

 

 

↑↑ 청학루(靑鶴樓) 1층 양쪽은 사무실, 찻집으로 사용되고, 2층은 설법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 청학루 통로를 지나면 아담한 마당이 나오고, 마당 한가운데에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이 있고, 그 뒤로 대웅전, 좌측으로 오백나한전, 우측으로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 학림사 대웅전(大雄殿)은 경사면에 터를 다듬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세웠다.

 

 

↑↑ 안에는 단층의 닷집을 설치하여 신라 말기에 조성되었다는 청동석가여래상을 모셨고,

     소형의 아미타여래불 탄생불을 봉안하였다. 또한 석가여래 후불탱화와 1985년에 조성한

     지장탱화, 신중탱화가 좌우에 있다.

 

 

↑↑ 대웅전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이다.

 

 

↑↑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미륵불, 정광불 등의 삼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6나한상과,

     뒤쪽으로는 오백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기지개를 켜는 모습, 등을 긁고 있는 모습 등

     갖가지 자세와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어 재미있고 해학적이다.

 

 

↑↑ 대웅전 우측에는 스님들 수행공간으로 사용되는 요사인 선불장(選佛場)이 자리하고 있다

 

 

↑↑ 대웅전 앞마당 끝쪽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梵鐘閣)이다.

 

 

↑↑ 범종각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듯한  범종이 모셔져 있고, 특이하게도 모형 학 한마리가

     보관돼 있었는데, 아마도 초파일 연등 행사때 사용하고 난 후에 이곳에 모셔둔 것 같아 보인다.

 

 

↑↑ 대웅전 우측에는 조그만 삼층석탑이 있는데 2층의 기단 위에 각 층의 감소폭이 크지 않은

     어찌보면 밋밋해서 재미도 없고 특별히 멋을 부리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 1층 탑신(塔身)에 돌사자 4마리가 위층 탑신을 받쳐들고 있고 탑 주위에는 참배객들이

     정성껏 갖다놓은 가지각색의 동자상과 불상들이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 석탑 우측의 언덕 위로는 소박하고 투박해 보이는 석조미륵불입상(石造彌勒佛立像)이

     인자한 모습으로 가람을 굽어보고 서있다.

 

 

↑↑ 근래에 세운 것이지만 몸통에 검은 때가 약간씩 입혀져 있어 연세가 조금 들어 보인다.

     세운지 대략 20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온후한 표정을 지닌 석불로 연화대좌 위에

     우뚝 서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그 생김새가 석탑의 형식을 띈다.

 

 

↑↑ 대웅전의 서쪽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삼성각(三聖閣)에는

     불상없이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이 모셔져 있다.

 

 

↑↑ 대웅전 뜨락에 늘 그늘을 드리워 주는 보호수인 노송(老松)은 그의 수령(樹齡)을

     정확하게 가늠할 순 없으나 대략 300~400년 남짓으로 여겨진다.

 

 

↑↑ 학림사는 가람 배치가 잘 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절집이다.

     참배를 하고 경내를 둘러보면 속세에서 흐트러졌던 마음들이 깨끗이 정리되는 듯 하다.

 

 

↑↑ 산세가 마치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포지란(鶴抱之卵)의 형국을 갖추어서 그런지

     산사(山寺)의 고요함과 포근함, 그리고 고즈녁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절이다.

 

 

↑↑ 비록 서울 시내와 가깝긴 하지만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듯 하기에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가다듬고 싶을때 한번쯤 찾아와 안기고 싶은 사찰이다.

 

 

 ↑↑ 학림사(鶴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曹溪寺)의 말사로서 신라 문무왕1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 고려시대 까지 법등이 꾸준히 이어져

     공민왕 시기에는 왕사 나옹스님(1320~1376)에 의해 크게 번성하였다고 전한다.

 

 

 

 

이렇게  2010년 12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찾은 학림사(鶴林寺)에서 백팔배를 마치고 나오는 등뒤에서는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맑은 음을 내며 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신묘년(辛卯年) 새해에는  모든 불자님들 더욱  복 많이 받으시고...

 

일년 365일 언제나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는 한해가 되시길 <다빈치> 합장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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