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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메고 떠나자

토끼해(辛卯年) 새해 첫날에 토끼를 만나다.

by 다빈치/박태성 201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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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묘년(辛卯年) 토끼해의 새해 첫날이 밝았다.


매년 새해 첫날에는 굳이 동해안은 아니더라도 서울 근교 산에서라도 꼭 해맞이(일출)를 했었는데

올해는 지독한 감기로 며칠동안 고생하는 바람에 신년 일출맞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내내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부리다가 오후가 돼서야 일어나 가까운 절에 참배를 가기로 하고

내복까지 껴입은 완전군장(?) 차림으로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새해 첫날의 참배 사찰은 강서구 개화산(開花山) 북쪽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약사사(藥師寺)이다.

지난해 늦가을에 다녀온 성남 남한산성 기슭에 있는 약사사(藥師寺)와 이름이 같은 사찰이다.


 

 

↑↑ 개화산 등산로 초입에서 7~8분 정도 오르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중앙에 안내석이 서 있다.

 

 

 

↑↑ 안내표지석이 서있는 오른쪽 길로 2~3분 정도 더 걸으면 개화산 중턱의 약사사가 나타나는데

     일주문이나 봉황문이 없이 현대식 사찰 입구의 형태로 되어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서 조선 순조 이전까지는 개화사(開花寺)라고

     불리다가 그 후에 약사사(藥師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 창건 역사는 삼한시대, 혹은 신라시대로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확히 언제 창건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고려 시대의 유물인 석불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도

     법등이 이어져 왔음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는 별다른 역사를 찾을 수 없다가 1737년(영조 13)에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에

     의해 크게 중수되어 송씨 가문의 원찰이 되었다고 한다. 송인명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어려서

     아주 가난했는데 개화사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였고, 1736년에 좌의정에 오르자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절을 크게 고쳐지었다고 한다.

 

 

 

↑↑ 조선 후기의 화가로 이름난 겸재(謙齋) 정선의 작품 중에는 개화사(開花寺)란 제목으로 개화산과 절,

     그리고 주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당시 그림 속의 개화사가 지금의 약사사(藥師寺)라고 한다.

 

 

 

↑↑ 경내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의 왼쪽에는 범종각과 삼성각, 마당 중앙에는 약사사 삼층석탑이 서있고,

     석탑 뒤에는 본법당인 대웅전이, 마당 오른쪽에는 감로당이 자리잡고 있는 간결한 배치이다.

 

 

↑↑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서 법당 앞의 마당만큼이나 시원스럽고 아름답다.

 

 

 

 

 

↑↑ 단청의 아름다움과 함께 대웅전 편액의 글씨체가 힘이 있어 보인다.

 

 

 

↑↑ 법당 안에는 주불로 석불(미륵부처님)과 석가모니부처님이 앞뒤로 모셔져 있으며, 협시불로는

     우측으로 관세음보살과 약사여래부처님, 좌측에는 지장보살과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 정면 중앙의 석불입상은 높이는 약 3m, 어깨폭은 약 1m이고 머리에 쓴 돌보관(왕관)은 지름이 무려

     1m나 되는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묘한 영험이 있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병이 낫고 소원을 이룬다 하여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 법당에서 108배를 마치고 앞마당으로 나오는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하얀색의 토끼 두마리가

     제 세상을 만난 듯 대웅전 앞마당을 신나게 뛰어 다니고 있었다.

     신묘년 토끼해 첫날에 토끼를 볼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소원성취(?)의 좋은 예감으로 다가온다.

 

 

 

↑↑ 대웅전 앞마당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삼층석탑은 1980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약 4m높이의 3층탑으로서 고려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의 불교미술이 다소 퇴화하던

     고려후기의 시대적 반영을 잘 나타내어 고려중기의 탑파건축(塔婆建築)의 변천과정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 대웅전의 왼쪽 앞에는 종무소와 요사채로 같이 사용하고 있는 감로당(甘露堂)이 자리잡고 있다.

 

 

 

 

↑↑ 감로당(甘露堂)의 좌측 2칸은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 요사채 앞에 가지런히 놓여진 스님의 신발(털신)이 정겹게 느껴진다.

 

 

 

↑↑ 대웅전의 오른편 얕은 언덕 위에 자리한 삼성각에는 독성각, 칠성신, 산신령님이 모셔져 있다.

 

 

 

 

↑↑ 삼성각 아래쪽인 정문 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한 범종각(梵鐘閣)이다.

 

 

 

↑↑ 감로당 아래쪽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의 해우소는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

 

 

 

↑↑ 눈도 많이 쌓여있고 날씨도 추웠지만 새해 첫날이어서 그런지 의외로 참배객들이 많았다.

 

 

 

↑↑ 참배를 마치고 개화산 중턱에서 바라본 한강에는 방화대교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2011년 1월 1일, 신묘년 새해  첫날의 백팔배 사찰탐방...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 약사사(藥師寺)에서 <다빈치>였습니다.


신묘년 새해에는 더욱더  복 많이 받으시고.. 성불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