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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由來가 있었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마라!

by 다빈치/박태성 2011.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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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말 중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마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말이 여러 가지 형태로 파생되어서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개구리 옆 발질하는 소리”, “지렁이 하품하는 소리” 등

여러 형태의 재미있고도 다양한 표현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일부 국어사전에서는 ‘씻나락’이 표준어이고 ‘씨나락’은 남부지방의 방언이라 하며

다음과 같이 그 뜻을 적고 있습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① 분명하지 아니하게 우물우물 말하는 소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 조용하게 몇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비꼬는 말.

③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


그렇다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씨나락>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겠지요.


씨 나락은 한해 농사가 끝나면 수확한 벼 중에서 잘 익고 튼실한 것 적당량을 골라

다음 해에 종자로 쓰기 위해 남겨놓은 볍씨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농사꾼에게 있어서 씨 나락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종자 씨가 아니라

내일의 희망이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 나락을 삶아 먹지는 않았습니다.

즉 씨나락을 없앤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민간에서 전해오는 재미있는 어원설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농사가 시작되는 새봄이 오면 씨나락을 못자리판에 뿌리는데,

그렇게 충실한 씨앗으로 뿌렸건만 발아가 잘 안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경우를 보고 사람들은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었기 때문’ 이라고 했는데,

귀신이 까먹은 씨나락은 언뜻 보기에는 충실하게 보여도 못자리판에 뿌렸을 때

싹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해에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 바람에 볍씨의 발아가 반도 안 되어서 농사를

완전히 망친 박노인은, 신경이 몹시 곤두서 있었다.

어떻게든지 이번에는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지 못하게 하여,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씨나락은 지금 헛방의 독에 담겨져 있다.

밤잠이 별로 없는 박노인은 온 밤 내내 헛방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뽀시락” 하는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기 무슨 소리고? 틀림없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재?"


"참 내, 아이고마, 고양이 소리 아이요. 신경 쓰지 말고 주무시소 고마."


선잠을 깬 할멈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짜증스럽게 말하자,

박영감이 화를 버럭 내었다.


"멍청한 할망구 같으니라구.. 그래, 임자는 이 판국에 잘도 잠이 오겠다."


할멈에게 타박을 준 박영감은 헛방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의 귀신아! 내가 네 놈의 짓인 줄을 모를 줄 아느냐?

내 다 알고 있으니 썩 물러가거라."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 박영감은 이제 바람이 문짝을 조금만

건드려도 큰기침을 하며 달려나가 온 집안을 돌며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이놈의 귀신, 어디로 들어오려고 문고리를 잡고 흔드노?

썩 물러가라, 썩! 썩! 이놈의 씨나락 귀신아!"


야밤중에 갑자기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온 집안 식구들이 깜짝깜짝 놀라 깨어서는

모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른이 엄동설한 한밤중에 바깥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데 어떻게 아랫사람이 뜨뜻한 구들목에 그대로 누워있을 것인가.


온 식구가 다 나가서 박영감의 노기가 가라앉을 때 까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는

들어오게 되는데, 천리만리로 달아난 잠을 내일을 위해 억지로 청해서 설핏 잠이

들려고 하면 또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야들아! 어서 나와 보그레이. 또 이놈의 귀신이 씨나락을 까묵으러 왔는갑다."


자식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어떤 날은 하루 밤에도 두 세번 씩 오밤중에 벌떡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가는

일이 계속되자, 온 식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일로 완전히 노이로제에 걸리게 됐다.


"영감, 제발 잠 좀 잡시더. 꼭 귀신이 씨나락을 까묵는다 카는 증거도 없는기고,

귀신이 굳이 씨나락을 까묵을라꼬 마음 묵으마 우리가 이런다꼬 못 까묵겠소?

제발 아이들 그만 들볶으소. 그 아이들이 내일 일 나갈 아이들 아이요?"


보다 못한 할멈이 영감을 붙들고 사정을 해보지만, 박영감의 고집을 누가 꺾으랴!


"이 할망구야, 우찌 눈을 뻔히 뜨고 귀신이 씨나락을 뽀시락뽀시락 다 까묵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고? 귀신이 안 까묵으모 도대체 누가 까묵었을끼고?"


그 해 겨울 내내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거의 매일 이렇게 밤잠을 설치다 보니

만성적으로 잠이 부족하게 되어 도무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아무리 효자로 소문 난 만식이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만식이는 기어이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부지요, 제발...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단 소리 좀 하지 마이소. 인자 고마 미치겠십니더."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라고 전합니다.



이 외에 또 한 가지의 유래가 있습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귀신 시나위가락 소리’에서 온 말이라고도 하는데

‘귀신 시나위가락’이란... 무당이 접신해서 신들린 춤을 추는 춤사위와 함께

무당의 입을 통해서 혼령의 원을 달래는 서글픈 노래 가락을 말합니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에는 "귀신 시나위가락"이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옵니다.



어쨌거나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지, 안먹는지는 본 사람이 없기에 알 수가 없고

이 말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는 "멀쩡한 사람 굶어죽게 할 말"이라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마라.”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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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국어학자도, 국어를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동안 이곳에 올렸고, 앞으로도 올릴 우리말의 유래에 관한 글은...

업무적(민속박물관 관련프로젝트)으로 우리말의 어원과 유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우리말 사전, 국어학자의 의견, 또는 웹서핑을 통해

얻은 자료를 보완 및 정리한 것이며, 대부분 학술적인 것보다는 재미있는

소재의 민간어원설을 기초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 글과 관련하여 또 다른 내용을 아시거나, 이견(異見)이 있으신 분은

댓글로 의견을 주시면 제 개인적 자료수집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