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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배 108사찰탐방

[88] 남한산성 개원사 - 호국사찰의 중심사찰 역할을 했던...

by 다빈치/박태성 201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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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자리잡은 개원사(開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서 장경사, 망월사와 함께 국가문화재 사적 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인조 때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새롭게 보수하기 위해 인조는 선종지도자

벽암 각성을 팔도도총섭으로 임명하고 승군(僧軍)을 모아 남한산성을 보수하게 하였는데

산성의 보수 및 방어 역할 역시 승군에게 주어졌다. 이를 계기로 1624년 개원사(開元寺)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후 남한산성 안에는 승군이 주둔할 7개의 사찰을 더 창건하게 되었고, 모든 승군의 본영

사찰로 개원사가 활용되었다. 이로서 개원사는 한양을 지키는 호국사찰의 중심이 되었으며

폐사되기 이전까지 조선불교의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894년에 들어와 승번 제도가

폐지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는 1907년 일제가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사찰들이 화약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찰들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장경사 기록에

의하면 개원사는 이때 폐사된 듯하며 1909년에 개원사의 루를 장경사로 이건했다고 한다.


현재 개원사(開元寺)는 경기도 시도기념물 119호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으며 경내에는

비록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수준 높은 성보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2011년 8월 28일 촬영)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一柱門)이 그렇듯이 대원사 일주문도 맞배지붕에 다포형식이다.

근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매우 굵은 기둥을 사용했으며 초석으로 서수의 모양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에는 청량산 개원사 조계문(淸凉山開元寺曹溪門)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개원사 입구 일주문의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언덕 위에 관세음보살상이 위치해 있다.

관세음보살과 함께 공양상이 조성돼 있고, 석주에는 '南無阿彌陀佛'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찰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일주문이 건립되었기 때문에 실제적인 정문의 역할은

이 천왕문(天王門)이 담당하고 있다.

 

 

건축형식은 맞배지붕의 건축형식으로서 천왕문(天王門) 이라고 현판을 달고 있으나

4대천왕이 모두 봉안되어 있지는 않다.

 

 

왼쪽 문짝에는 칼을 들고 있는 동방천왕인 지국천왕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문짝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는 서방천왕인 광목천왕이 그려져 있다.

 

 

천왕문과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는 개원사 안내 간판

  

 

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1기의 사적비(寺跡碑)와 3기의 공덕비(功德碑)가 있는데

가장 커다란 비가 사적비이며, 나머지 3개는 공덕비이다.

 

 

드디어 눈앞에 개원사 전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법당으로 가는 계단 아래쪽에 작은 불단을 조성하여 관세음보살석상(觀世音菩薩石像)을 모셔 놓았다.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부조 형식으로 조각되었는데 매우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그리 넓지는 않으나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사찰 전체의 모습이다.

 

 

대각전(大覺殿)은 개원사의 주법당으로 1976년에 새롭게 건립한 법당이다.

 

 

마당과 구분되게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대각전 건물을 건축했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팔작지붕으로 마무리 했는데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는 커다란 용머리를 장식했다.

 

 

전면의 창호는 각각 4짝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빗살을 사용하고 있다.

 

 

대각전 내부 불단의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좌측에는 지장보살, 우측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고,

후면에 석가모니후불탱화를 봉안했다.

 

 

왼쪽 간에는 신중탱화를 봉안했고, 오른쪽 간에는 시왕탱화를 봉안했다.

 

 

대각전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심우도는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묘사한 그림이다.

 

 

대각전 앞마당에 자리 잡은 삼층석탑(三層石塔)은 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졌으며,

개원사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부 2단의 기단은 조각이나 장식 없이 단순하며

3단의 기단은 각 면마다 3개의 기둥(우주 2개, 탱주 1개)을 새겨 넣어 가구식 기단을 표현했다.

 

 

대각전 앞마당의 왼편에는 석탑(石塔)이, 오른편에는 석등(石燈)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석등 역시 근래에 조성된 것은 아니고 창건당시에 만들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대각전에서 좀 떨어진 한단계 낮은 대지에 범종각(梵鐘閣)이 위치하고 있다.

정면3간 측면 2간으로 팔작지붕 형태로서 2층의 누각형식으로 건립되었다.

 

 

현판과 주련은 주진입로 쪽에서 보이도록 매달지 않고, 대각전 쪽을 향해 매달은 것이 특징적이다.

 

 

1996년에 조성된 전형적인 한국 종의 형식이며, 종신에는 비천상을 새겨 놓았다.

 

 

대각전 마당 오른쪽 끝에는 불유각(佛乳閣)과 화현전(化現殿)이 나란히 조성돼 있다.

 

 

화현전(化現殿)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측면은 풍판을 이용하여 막아 대었고 전면창호는 모두 4짝의 띠살 창호를 이용했다.

 

 

화현전(化現殿) 내부에는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석불의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한눈에 약사여래불임을 알 수 있다.

 

 

화현전과 나란히 세워진 불유각(佛乳閣)은 '부처님의 젖이 흐르는 전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사찰의 경우는 대부분 우물에 불유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곳 개원사에서는 전각에 ‘불유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이채롭다.

 

 

불유각 내부에는 석불이 1기 모셔져 있는데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이다.

 

 

화현전의 오른편에는 작은 불단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불신은 마모가 심한 상태이며 조각 수법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불상에 비해 매우 세밀하다.

따라서 개원사의 창건 연대인 1624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각전 왼편에 위치한 요사채인 심우당(尋牛堂)이다.

 

 

정면 5간, 측면 3간의 매우 커다란 건물로 팔작지붕의 멋스러움과 깔끔함이 돋보인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안심요(安心寮)는 개원사의 요사이다.

 

 

 

정면 4간, 측면 1간 규모의 맞배지붕 형식 건물로서 담장에 의해 따로 구획된 독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개원사가 호국사찰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건물인 승장조사전(僧將祖師殿)이다.

범종각 너머 넓은 대지에 따로 세워진 건물이다.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찍을 수 없었다.

 

 

대각전 앞마당의 한단계 아래 왼쪽으로 아담한 규모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연못 옆쪽으로는 울타리 형태를 갖춘 무궁화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2011년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늘의 108배 108사찰 탐방,  지금까지 남한산성 개원사에서 <다빈치>였습니다.

 

법우님들 성불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