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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배 108사찰탐방

[122] 용문산 사나사 - 신라 천년역사가 숨쉬는 용문산 3대사찰

by 다빈치/박태성 2014. 2. 17.

 

전통사찰 제48호인 사나사(舍那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서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 용문산의 주봉인 백운봉 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용문산(龍門山)은 항일 의병 활동과 함께 일제에 의한 탄압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며

용문사와 상원사 등의 유서 깊은 사찰들이 위치하고 있고 산 속 맑고 깨끗한 계곡 풍경이

뛰어나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나사(舍那寺)는 신라 경명왕 7(923)에 고승인 대경대사(大鏡大師) 여엄(麗嚴)이 창건,

5층석탑과 노사나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사찰 이름을 사나사(舍那寺)로 지었다고 합니다.

고려 공민왕 16년에 태고왕사 보우가 140여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동란을 겪으며 몇차례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중창과 재건불사가 이어져 법등이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천년의 향기가 서려있는 사찰입니다.

 

사나사 경내에 있는 문화재로는 원증국사석종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72), 원증국사석종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 용천리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1)이 있고, 대적광전

앞마당 동쪽편으로 석조미륵여래입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4214일 촬영)

 

 

 

 

양평으로 향하는 6번국도를 달리다가 유명한 옥천면 냉면타운 쪽으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한껏 여유로워 보이는 마을길 입구에 사나사 방향을 알리는 친절한 안내판이 서있습니다.

 

 

 

사나사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있어 울창한 숲길의 맑은 공기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다보면 일주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일주문(一柱門).. 아시다시피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1982년 주지 포운당 태공선사가 봉은사로부터 양도받아 이곳에 옮겨 세웠다고 하는데

기둥은 원주(圓柱)를 사용했고 기둥 안쪽과 창방 아래쪽에 낙양각으로 장엄을 더하였습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아직 단청을 하지 않아서 고색창연한 멋은 없지만 원목의 향이 느껴집니다.

 

 

 

일주문 옆의 계곡에는 잔설이 덮인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버들강아지가 망울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구비진 언덕을 오르니 사찰 입구에 참배객들이 쌓아올린 돌탑이 길가에 늘어서 있습니다.

돌탑에 담긴 소원 하나하나... 모두 성취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로 쌓아 올렸겠지요...

 

 

 

돌탑들이 늘어선 언덕길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서니 드디어 사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경내에서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2005년에 새로 신축했다는 범종각입니다. 사찰 내부로 가려면

범종각(사진의 왼쪽 누각)을 우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범종각(梵鐘閣)은 화강석판을 붙인 기단 위에 원형초석과 함께 원주기둥을 세웠으며

전면 3, 측면 2간의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으로 건축된 누각입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을 비롯하여 법고와 운판, 목어 등 불전사물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데,

불전사물(佛殿四物)이란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릴 때 사용하는 4가지 법구를 말합니다.

이것은 물고기 모양의 나무통인 목어(木魚)와 구름 모양을 한 쇠붙이인 운판(雲版)입니다.

 

 

 

커다란 범종(梵鐘)과 법고(큰북)입니다. 범종의 표면에는 여러종류의 문양을 새기는데,

일반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비천상(飛天像:하늘을 나는 천인의 그림)입니다.

 

 

 

범종각을 돌아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며 마당 뒤쪽 끝에는 대적광전(본법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극락전과 우측에 석탑을 비롯, 삼성각 등의 전각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사나사의 주불전(主佛殿)으로서 전면 3, 측면 3간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적광전이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본존불로 모시는 전각을 말합니다. 대부분 사찰에서 많이 보는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전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화강석을 다듬어 기단을 높게 만들었으며, 정면 중앙에 장대석을 이용해 만든 계단이 있고

계단 좌우에는 소맷돌을 설치하였으며, 기단 윗면은 장방형의 판석을 깔아 마감하였습니다.

 

 

 

정면에는 어간에 6분합문, 협간에 4분합문을 설치하였는데 창호는 아래에 궁창부 2단을 둔

빗꽃살로 모두 동일하게 만들었으나 어간과 협간의 꽃무늬를 다르게 하여 변화를 주었습니다.

어간 윗쪽에 "大寂光殿"이란 현판을 걸었고 4개의 각 기둥에는 주련을 걸어놓았습니다.

 

 

 

 

내부에는 후면벽에 의지하여 불단을 설치하여 삼존불을 모셨으며, 양 측면에도 각각 불단을

마련하여 지장시왕탱과 신중탱을 모셨고, 후면 쪽 툇간 벽에는 각각 영단과 사나사의 중창주인

태고 보우선사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중앙 불단에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부분 대적광전에는 가운데 비로자나불, 좌우 협시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조금은 특이한 배치 방법입니다.

 

 

 

불단 상부에는 자형 평면을 한 중층의 닫집을 설치하였는데, 닫집은 허주와 연봉, 낙양각,

많은 출목을 지닌 공포, 내부의 용과 극락조 및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을 베풀었습니다.

 

 

 

지장시왕탱은 대적광전의 건립과 함께 그려 봉안한 것으로 중앙에 지장보살의 좌상을,

좌우 대칭의 구도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을 비롯한 권속들을 그렸습니다.

 

 

 

측면과 후면에는 심벽구조의 벽을 들였으며, 7폭의 심우도 벽화와 함께 꽃을 그렸습니다.

 

 

 

대적광전의 서쪽 옆에 자리한 극락전(極樂殿)은 정면 3, 측면 2간 규모의 맞배지붕 형식이며

단청이 안된 걸로 보아 최근에 지은듯 합니다. 기둥의 높이와 전면 칸들의 비례도 좋고 박공면의

깊이감도 적당하여 거듭봐도 질리지 않는 소박한 건축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으로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왕생케 한다는 여래로

현세불이지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이라 부릅니다.

 

 

 

극락전(極樂殿)의 내부 전경입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존불의 뒤편과 ""자 형태의 좌우 벽에는 천불상이 모셔져 있어 온통 황금빛입니다.

 

 

 

극락전 뒤편에는 다비굴뚝이 서있고, 그 옆에는 양각으로 새긴 석불 세개가 놓여 있네요.

 

 

 

앞마당 서쪽에 동향으로 자리한 요사(寮舍)는 전면 7, 측면 3칸으로 꽤 큰 규모로서

기존의 요사채가 화재로 없어져 최근에 새로 지었는데 종무소 및 스님들의 공간입니다.

 

 

 

대적광전 동쪽 뒤편에는 축대를 쌓아 한 단 높게 조성된 대지 위에 삼성각(三聖閣)

조사전(祖師殿)이 나란히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은 사나사 사역의 가장 뒤쪽에 해당하는 곳이며 3×1간의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 형식으로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정면 세간 모두에 두짝 여닫이문을 달았습니다.

 

 

 

내부에는 불단 후벽에 산신탱을 중심으로 양 협간에는 칠성탱과 독성탱을 봉안하였습니다.

 

 

 

삼성각 쪽에서 바라본 사찰 전경입니다.

 

 

 

삼성각과 나란히 서있는 조사전(祖師殿)은 전면 3, 측면 2간의 맞배지붕의 전각입니다.

 

 

 

내부에는 고려시대 후기 사나사를 중창했던 보우대사의 진영을 봉안해 놓았습니다.

 

 

 

대적광전 동쪽 뒤편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곳에 서향하고 있는 함씨각(咸氏閣)입니다.

1956년 당시 주지스님께서 함문성 단월의 도움으로 조영한 사방 1간의 작은 전각으로서

내부에는 후면 벽에 의지하여 자형 단을 마련하고 함씨 조상의 영정을 봉안하였습니다.

 

 

 

대적광전 앞마당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용천리삼층석탑(三層石塔)입니다.

 

 

 

1983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1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용천리삼층석탑(三層石塔)

고려 시대 일반형 석탑인 3층 석탑으로 지대석이 탑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기 때문에

원래 자리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가 없으며 기단은 4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 있으며 탑의 몸돌과 지붕들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 졌습니다.

 

 

 

2층으로 된 기단과 3층의 탑신 및 일부가 파손된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신라시대 탑의 모습을 따르고 있고 규모가 작은 편이며, 기단의 구성이 생략적이고,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단인 점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들어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된 원증국사석종비(圓證國師石鍾碑)는 고려시대 후기

사나사를 중창했던 원증국사 보우의 탑비로 대적광전 앞마당 동쪽 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는 퇴락이 심하여 문화재 보호를 위해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습니다.

 

 

 

자연암반의 지대석을 파서 비신(碑身)을 끼워 세웠는데 비신 양옆에 장방형 기둥을 세워

비를 보강하였고 위에는 밑이 둥근 반구형의 옥개석을 얹어 비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원증국사석종(圓證國師石鍾)입니다.

원증국사 보우의 묘탑(墓塔)으로 원증국사 부도라고도 불리며 원증국사가 소설암에서

입적한 이듬해 다비를 하니 사리가 무수히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적광전 서쪽 원증국사 부도 옆쪽에는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이 서향으로 서있습니다.

미륵불입상은 연화대좌 위에 서 있으며, 방형의 기단 정면에는 조성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통견의 법의를 입고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올리고 있으며, 왼손은 앞으로 내려

손바닥을 보이고 있고, 머리가 큰 편에 속하는데 어린이 같이 해맑은 미소가 인상적입니다.

 

 

 

미륵불입상 석축 아래 산수유 나무가지에는 산수유 열매가 마른채로 예쁘게 달려 있네요.

 

 

 

신라 천년역사가 숨쉬는 용문산 사나사(舍那寺)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이 있기에

, 여름, 가을, 겨울, 언제 들려도 운치있는 산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2014214, 백팔배 사찰 순례...

 

지금까지 경기도 양평  용문산 사나사에서 <다빈치>였습니다.

 

불자님들, 성불하십시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