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 용화사(龍華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末寺)로
수원시 권선구 칠보로 88번길 260번지 칠보산(七寶山) 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원시 동북쪽에 광교산(582m)이 있고, 서쪽에 칠보산(234m)이 있는데, 용화사가 자리한
칠보산(七寶山)은 해발 234m로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지점이며, 산능선이 매우 완만하여
노약자나 여성들의 등산코스로 적당하고, 자연생태학습장으로도 개방하고 있습니다.
칠보산은 예부터 8개의 보물(금, 산삼, 맷돌, 잣나무, 황계수닭, 범절, 장사, 금닭)이
숨겨져 있어 팔보산(八寶山)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때인가 8개 중에서 한 개의 보물인
금닭을 누군가가 가져가게 되어 칠보산(七寶山)이란 이름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절이름인 용화(龍華)는 용화수를 말하는데 도솔천을 주재하던 미륵보살이 지상세계에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3회의 설법을 통해 수많은 중생을 이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용화사는
이러한 미륵신앙을 토대로 하는 도량으로 미래지향적 이상세계인 용화세계의 건설을 지향합니다.
(탐방일 : 2016년 6월 17일)
▲ 칠보산에 오르는 길에 만난 개망초 군락입니다.
▲ 사찰 입구 돌담 위에서 꽃을 피운 얘네들 이름은 바위취입니다.
▲ 바위취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신기하게 생겼지만 매우 아름답습니다.
▲ 경내에 들어서면 눈앞에 규모가 꽤 큰 전각이 나타납니다.
▲ 대자비전(大慈悲殿)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제가 알고 있기로는
대자비전(大慈悲殿)은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신 전각입니다.
▲ 대자비전의 왼쪽길로 올라갑니다. 용화사의 본법당인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 넓은 마당 뒤편으로 칠보산 자락을 등지고 대웅전(大雄殿)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면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니 지붕의 처마선이 바르지 않고 곡선형태로 휘어져 있습니다.
▲ 처음부터 휘어지게 지은건지 지반이 내려 않아 건물이 손상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세월따라 휘어진 처마의 모습이 고풍스럽기까지 합니다.
▲ 원래 절이 자리잡은 곳은 1910년 이래 마을 사람들이 토속당산제를 겸하여
자그마한 당우를 지어 자목당이라 부르면서 공동관리 해왔던 곳이라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당우를 돌보는 사람이 없어 점차 퇴락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안타갑게 여긴 김귀동 스님께서 1969년 수원에살고 있던 김호겸 등 여러 선남선녀들의
시주를 받아 대웅전, 산신각, 요사 등을 새로 지어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다.
법당에 미륵불(彌勒佛)을 봉안하고, 절이름을 용화사(龍華寺)라 하였답니다.
▲ 대웅전 주련에 있는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은 불심은 무엇하나 차별 없이
모든 생물 앞에 두루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과응보(因果應報)보다는 행운을 바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또 다른 대웅전의 묘미는 하나하나 조각으로 만들어진 문살의 문양인데요
빛바랜 색상마저 은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 대웅전 내부로 들어가니 옆으로 비스듬이 기울어진 마애석불이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천정에는 기복을 바라는 신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걸려 있고, 화분에도 모두 이름이 써있습니다.
용화의 세계를 기다리며 수행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고 개인의 소원만 비는 기복(祈福)만 있습니다.
▲ 기울어져 있는 석불의 모습은 나발에 육계사 높고 상호는 통통하며 이목구비가 분명합니다.
눈은 반개한 명상에 든 모습이며 입술은 두텁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습니다.
삼도는 굵게 표현하였고 법의는 통견이며 수인은 아미타로 추정되니 고려시대 석불이 아닐까 싶습니다.
▲ 용화사 미륵불에 관해서 수원시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설화 몇 편 중 한편을 복사해 왔습니다.
미륵불의 조성 시기는 정확히 전하는 바는 없다. 조선 중엽이거나 말엽쯤으로 추정될 뿐이다.
여느 마을과 다름없는 자그마한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하거나 연자방아나 돌절구 멧돌을 만들
돌을 얻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며 미륵골에 서있는 미륵을 향해 합장을 하는 정도의 경의를 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미륵의 받침돌에 작은 돌을 문지르면 잘못이 있는 사람은 그 돌이 거기에
들러붙고 죄가 없으면 돌이 붙지 않는다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김실개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의 꿈에 이곳에 가면 미륵불이 계시니
치성을 다하라는 선몽이 있어 이곳을 와보니 정말로 미륵불이 있었다 한다. 김실개는 미륵불
앞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성을 다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장을 쓰고서라도 치성을 드렸다.
대수롭지 않게 미륵을 대하던 마을 사람들은 실개의 지극정성에 미륵의 영험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이에 허름하게나마 움막을 지어줌으로써 그녀로 하여금 치성을 다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죽고나자 마을의 유지들이 합심하여 절을 짓게되는데 그러면서 미륵불을
더 잘 모실 요량으로 미륵에 칠을 하역는데 미륵의 눈에 칠을 하던 이는 그 자리에서 눈이 멀었다 한다.
그리하여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은 미륵의 칠을 벗기고 지금과 같은 미륵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다.
▲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다본 대자비원 전각입니다.
▲ 절 마당에 서있는 큰 나무는 흔히들 염주나무라고 부르는 찰피나무입니다.
▲ 대웅전 뒤편 언덕위에는 아주 조그만 규모의 산신각(山神閣)이 있는데,
내부는 혼자만 겨우 절을 할 수 있는 좁은 공간입니다.
▲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 없는 민족 고유의 토착신이었으나 불교에 흡수되어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주로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을 한 산신상이나 이를 그린
탱화,치마 저고리를 입고 호랑이 위에 앉아 있는 할머니상, 백발의 수염에 긴 눈썹을 날리며
손에는 깃털부채나 불로초를 들고 있는 산신을 그린 탱화 등을 봉안합니다.
▲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소리가 그윽히 산사에 울려 퍼집니다.
▲ 대웅전 뒤편 산자락에 피어 있는 백합입니다.
▲ 스님이 심어서 자란 건지, 이곳에 자생한 건지는 모르지만 매우 아름답습니다.
▲ 내려오면서 돌담 위에 피어 있던 바위취를 다시 한번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 언덕길을 내려 오면서 대자비전 현판을 멀리서 줌인해 봅니다.
▲ 주차장 한켠에는 끝물인 초롱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습니다.
▲ 용화사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내가는 길 옆으로 분홍낮달맞이꽃이 예쁘게 피어 있네요.
▲ 길옆 개천가에는 붉은토끼풀도 오가는 길손들에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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