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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메고 떠나자

법정스님의 향기와 발자취를 찾아서...<1>

by 다빈치/박태성 201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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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80년대 까지 서울 장안에는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손꼽던 요리집이 있었는데,

우이동의 선운각과, 삼청동의 삼청각, 그리고 성북동의 대원각이었습니다.


두곳은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성북동의 대원각 만은

요정 주인이었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씨가 무소유의 청빈함으로 존경받는 법정 스님에게

재산 전부를 시주해 길상사(吉祥寺)란 사찰로 탈바꿈하여 현대 역사에 재등장하게 됩니다. 


더 없이 고즈넉한 사찰 풍경이 예전에는 고급 요정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께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달라 청했던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씨는

당시 천재 시인 백석과의 연인사이로서 그들의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감동을 자아냅니다.


김영한.. 법명 길상화(吉祥花)... 그녀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가난에 시달리다 결국 열여섯 나이에 기생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 세계에서 아름다운 미모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그녀는 ‘백기행’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당시의 천재 시인이라 불리던 <백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백석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는 원치 않는 이별을 했던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 이 시에 이런 사연이 담겨 있는지 몰랐지요.)


시간이 흐른 후, 기생 김영한은 대원각의 주인이 되어 당대의 크나큰 부를 누리게 되지만

매년 7월 1일 백석의 생일날이 되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그를 기렸다고 합니다.

시인 백석의 업적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백석 문학상’ 역시 그녀가 제정하여

지속적으로 후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법정스님에게 그 당시에 시가 천억 원에 달하던 대원각을 시주하겠다고 했을 때,

법정 스님은 사실 이를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10년 동안 계속된 그녀의 청에 마음이 움직인 법정스님은 결국 1995년 그 뜻을 받아들여

길상사를 개원 하시게 됩니다.


김영한은 이후, 그 큰 돈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 돈은 그 사람의 시 한 줄 값만도 못합니다. 백석의 시를 읽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고 내게 있어 그의 시는 생명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원천수였습니다.”


1999년에 세상을 떠난 김영한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길상사(吉祥寺)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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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늘의 백팔배 사찰탐방은...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남아있는 길상사로 정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는 지난 봄 3월11일 법정스님이 78세(법랍 54세)로

입적하신 곳이라서  저는 지난 3월 14일에 법정스님의 빈소에 참배를 하고 왔더랬습니다.

 

길상사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경내 곳곳에 나무와 계곡, 잠깐씩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놓여 있고, 참선 수행을 위한 명상 공간이 여러군데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  길상사 일주문(一柱門)입니다.

 

 

 

 ↑↑ 일주문은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속세에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사찰의 모든 사무행정이 이루어지는 종무소가 있습니다.

 

 

 

↑↑ 정면으로 법당쪽을 바라보면 수령이 265년이나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는데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었으며 높이가 12미터, 둘레가 3.2미터라고 합니다.

 

 

 

↑↑ 길상사의 전체 배치를 한눈에 볼 수있게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판...

 

 

 

↑↑ 언제나 그렇듯, 백팔배를 위해 제일 먼저 법당으로 향합니다. 극락전(極樂殿)입니다.

 

 

 

↑↑ 극락전(極樂殿)은 전통 한옥구조를 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가를 연상케 하며

     이곳이 그 옛날에 '대원각 요정'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법당에는 본존불인 아미타 부처님과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 아미타불을 주존(主尊)으로 모신 것은  도심 가운데 생긴 도량이 보다 많은 불자들을

     이고득락(離苦得樂)으로 이끄는 터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합니다.

 

 

 

↑↑ 길상사에는 법고루(法鼓樓)가 별도로 조성되지 않고 극락전 입구 우측에 있습니다.

     2009년  목어(木魚), 운판(雲版), 법고(法鼓)가 차례로 봉안되어 아침 저녁의 예불과

     중요한 행사에 앞서 울리고 있으며, 북이 울릴 때마다 땅위의 축생을 제도해줍니다.

 

 

 

↑↑ 운판(雲版)은 전체적 모습이 뭉게구름 형태를 띄는 청동 혹은 철구로 만든 법구인데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새와 같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목어(木魚)는 말그대로 물 속에 사는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물고기 모양의 법구인데,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가

     졸지 말고 불법을 닦으라는 뜻에서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다고 하며, 목어를 두드려서

     잠을 쫓고 정신을 깨우기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

 

 

 

↑↑ 법고 뒤편의 작은 바위에 나열된 동자승 인형들입니다. 참 재미있는 표정들입니다.

 

 

 

↑↑ 극락전 우측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梵鐘閣)입니다.

     범종은 땅 위와 하늘세계를 울려 인간과 천신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의 이 범종은 공덕주이신 길상화 님이 단독 시주해 봉안되었으나 2009년 9월에

     여러 불자님들의 동참으로 다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  범종각의 오른편 쪽에 길다란 형태의 건물로 지어진 설법전(說法殿)입니다.

 

 

 

↑↑ 대규모의 설법이 이루어지는 전각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 설법전의 바로 앞에는 특이하고 아름다운 예술 조각의 형태인 관음상이 서 있습니다.

     이 관음보살상은 길상사 창설 당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씨가 만들어 봉안한

     석불상으로서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의미있는 관음상입니다.

 

 

 

↑↑ 마치 성모마리아 상을 닮은 보살상을 보노라면 길상사가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가

     다른 사찰에 비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며, 종교를 초월하여 교류하셨던 법정스님의

     넓디넓은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  법당의 왼쪽편에는 최근에 건립한 듯한 웅장한 규모의 지장전(地藏殿)이 있습니다.

 

 

 

↑↑ 지장전의 지장보살님은 왼손에 보주를 들고 계시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고 손에 석장을 지닌 모습입니다.

 

 

 

                      ----------------- 2편으로 계속 -------------------